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문단 편집) ==== 검사 김홍섭의 구형 논고 ==== >"소감을 간단히 말하면 유감스럽다고 하겠다. 내가 취조한 중 특히 '''박낙종은 50 평생 중 30년의 투쟁사를 가진 혁명 투사'''였으므로 만강의 감사를 드리는 한편 많은 감회를 느꼈으며 사회 여론은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좌우익이 한층 소원하여지는 감상을 주는데 이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민족 구성의 일인으로 매우 유감히 생각한다. 법률가 입장으로는 형사사건이나 돌이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볼 때에는 조선의 기근(饑饉)이요 민족적 비극으로 본다. 나는 '''김창선이 공판정에서 죽고 싶다 말할 적에 2000년 전에 일어난 예수를 은 30량에 잡아준 가롯 유다'''의 비극을 상기했다." >---- >10월 21일의 구형 공판에서 '''검사''' 김홍섭의 구형 논고 '''검사'''가 조선공산당 간부 박낙종의 독립운동 경력을 인정하며 박낙종을 예수에 박낙종을 끌어들이는 진술을 한 인쇄공 김창선을 배반자 가롯 유다로 비유했다. >'''"공산당 자체가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애 장난을 잘못 감독한 것이라고 본다"''' >---- >'''검사 김홍섭의 구형 논고''' '''검사'''가 사실상 박낙종과 이관술 등의 형사책임을 부정했다. 그런데도 유죄판결이 내려진 것은 비정상적이다. >"재판에까지 간섭하려 하다니 재판에까지!" >---- >검사 김홍섭의 사석 발언 김홍섭은 이 사건으로 검사직에 회의를 느껴 사임했다. >증거물 중에는 기소사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없었고, 판결은 피고인들의 자백에 의거해서 이뤄졌다. 그런데 여러 피고인들은 경찰과 검찰에서의 진술이 고문에 의한 허위였다고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공장장 안순규는 진술을 번복했다 해서 위증죄로 추가기소를 당하기까지 했다. 정판사 사장 박낙종은 위폐를 인쇄했다는 시기에 서울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홍섭 검사가 돌연히 사표를 제출한 것도 무리한 진행에 대한 반발로 널리 해석되었다. >----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199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